8월 첫 째주, 읽고 있는 책들




 한홍구의 '대한민국사'를 읽다가 당연하게도 싶게 국리(國利)만 취하는 나의 편협한 민족주의에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전쟁, 그 이름은 모든 생명체에겐 끔찍한 운명이 닥쳐올 것이라는 예고장, 허나 자신의 발 아래에 명예와 권력이라는허울의 천자락을 깔아놓고 있는 사람은 결코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결국 전쟁을 명목으로 취하면서 자신도 삭아든다.

 독일의 독재자를 벗어나 화가가 될 수도 있었던 히틀러를 생각해 보게 된다.

 화가가 됐다면, 어쩌면 그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았을까. 그의 불타는 듯한 성격을 보자면 가능했을 법도 싶다.(나중에 히틀러에 관한 책도 자세히 읽어봐야겠다.)

 단순히 베트남 전쟁을 우리나라가 미국을 도와 공산주의의 위에 우의를 점했다는 것, 상이군인과 고엽제에 찌든 사람들의 고통스런 외마디와 과거로 인해 현실에서 파묻혀버린 이들에 대한 연민등을 벗어나 우리나라가 했다는 사실을 무조건 '정의'로 치부했던 나의 어설픈 뒷모습을 살펴보았었다. 기회가 되면 베트남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었으나 그럴 만한 책이 없었다. 대부분이 '앙코르 와트'같은 세계 유명 문화 유적지들에 대한 탐방기.

 그런데 우연치 않게 보게 된 것이 <베트남, 베트남>이었다. 읽다가도 산문인가? 소설인가? 싶을 정도로 한 장면 한 장면이 생생하다. 아직 다 읽진 못했으나 하루 만에 해치울 수도 있을 것 같다.





 


  김원일의 소설을 좋아한다. 딱히 좋아한다고 말할 입장은 아니다. 나는 그저 그의 대표적인 소설, "마당 깊은 집"에 한 때 심취해 있었을 뿐이었다. ('심취'라는 말을 조심스레 써 본다.)
 당시의 기억으로 회귀해 보면, 소설을 읽는다는 것 보다 소설을 다 읽는다는 것에 정신이 팔려 마지막 페이지의 끝머리를 훌훌 넘겨버리고는, "아! 다 읽었다." 독자로써 아주 고약한 심보다.(<-심취라는 말은 취소다. 부득이 저 앞 뒤가 맞지도 않은 단어를 박아놓은 까닭은 내 자신의 오만과 미흡함을 자각하기 위해서다) 
 내가 생각하기론 불의제전도 조정래씨의 '태백산맥'과 버금갈 정도로, 아니, 그 이상의 가능성도 엿보이는데 어째서 제대로 된 평가가 보이지 않는 걸까? 단순히 책의 뒷면이나 인터넷 서점 상의 서평을 보자면 그렇다는 이야기다. 많은 독자들이 이 책을 읽어보고, 나름대로 느끼는 바가 많지 않을까 싶다. 1,2권만 읽어도 그의 작가적 기량을 확연히 볼 수 있다.
 어쨌든 7권까지 정면돌파다!
 김원일씨의 소설을 모두다 읽고 싶다. 그다지 취미를 붙이지 못한 소설집까지.

 차례차례 나열해 보자.

늘푸른 소나무 上,下
가족 1,2
사랑아 길을 묻는다
마음의 감옥
잃어버린 시간
도요새에 관한 명상
오늘 부는 바람
어둠의 혼
히로시마의 불꽃
아우라지로 가는길 1,2
불의 제전 1~7
푸른 혼
환멸을 찾아서
잠시 눕는 풀
겨울 골짜기
물방울 하나 떨어지면
마당깊은 집





 실은 그냥 도서관에서 끌리길래 골라봤다. '하늘 길'이라는 단어를 읽는 순간 선연하게 머릿속에 그려지는 것은 구름 속이었다.
한승원이라는 작가도 어디서 많이 들어봤던지, 쉽사리 처음보는 작가의 책을 고르지 않는 나의 손이 첫번째로 이 책을 집어들었다. 정약전, 정약용 형제의 이야기인가? 머릿말에는 그렇게 써져 있다. 언젠가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읽고 상당히 깊은 인상을 받은 적이 있다. 다시 한번 읽어봤으면 하는 책이었다.
 
 역사적 인물은 웬만하면 소설로써 치장되서는 안될 상징성이 깃들어져 있다. 김훈의 칼의 노래라던지 김진명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라던지(그 밖에 그가 과감히 현실에서 벗어나 소설적 세계로 이끌었던 현존 인물들의 이야기들), 갖가지 인물들의 평전이라던지(나는 전에 여운형 평전과 님 웨일즈의 아리랑을 약간 읽은 적이 있었다)…. 자칫 잘못하면 자신의 판단을 흐리고 남의 판단으로써 사람을 섣불리 결정내리는 첫인상의 무작정적인 현혹에 휘말리게 되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여운형 평전 같은 경우에는 그 속에 우리가 그토록 우러러 마지 않았던 백범 김구가 간접적이나마 부정적으로 묘사되어 있으며, 백범 일지에서의 여운형 또한 그렇다. 하지만 인간은 완전치 못한 존재다. 서로가 서로에게 미치는 영향은 제 3자가 생각했던 것과는 무시무시한 차이를 보이며, 나 또한 이런 현실의 괴리를 지켜보며 혼란스러웠던 것이다. 그래서 요즘엔 인물에 대한 개인적인 평가에 휘말려들어가지 않도록 웬만하면 피하는 편이다. 최근에 이휘소 평전을 보며 가까스로 넘어갔다….(중3때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밤 샘 읽었던 기억이 난다. 난 웬만해선 책 1시간 이상 못 읽고, 읽다가 쓰러져 자버린다…) 

어쨌든, 이 책도 얻는 바가 클 것이라 생각하며 기대가 크다.

by 목마른우물 | 2007/08/04 23:25 | 일 주일의 책 두권 | 트랙백 | 덧글(0)

화려한 휴가를 보다



감독 : 김지훈

출연 : 안성기, 김상경, 이요원

줄거리
1980년 5월, 광주. 광주에 사는 택시기사 민우( 김상경
분). 어릴 적 부모님을 여의고 끔찍이 아끼는 동생 진우(이준기 분)와 단둘이 사는 그는 오직 진우 하나만을 바라보며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다.
진우와 같은 성당에 다니는 간호사 신애(이요원 분)를 맘에 두고 사춘기 소년 같은 구애를 펼치는 그는 작은 일상조차 소중하다. 이렇게 소소한
삶을 즐기는 이들에게 어느 날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진다. 무고한 시민들이 총,칼로 무장한 시위대 진압군에게 폭행을 당하고
심지어 죽임을 당하기까지 한다. 눈 앞에서 억울하게 친구, 애인, 가족을 잃은 그들은 퇴역 장교 출신 흥수(안성기 분)을 중심으로 시민군을
결성해 결말을 알 수 없는 열흘 간의 사투를 시작 하는데…

 나는 광주 사람이 아니다. 그렇다고 민주화의
열망을 주저 없이 희생으로써 드러냈던 1318세대 또한 아니다. 90년생인 나에게 민주화는 그저 관망의 대상이었다. 그저 안위의 나락에 당연히
있어야만 할 것 같이 놓여 있던, '노력'없이 이루어진 평화.


 난 그 평화에서 희망과 동시에 절망을 느낀다.


 어려움 하나 없이 종이 한 장 차이로 흘러가는 지구의 세월 속에서 나는 그저 손에서 손으로 건너받은 주저없는 행복에
안주하고 있을 따름이기 때문이다.


 2박 3일 동안 광주에 살고 있는 언니 곁에 있었다. '기담', '해리포터', '다이하드 4.0', '라따뚜이', '디 워'….
나열된 영화 포스트 중 어렵사리 내가 선택한 것은 '화려한 휴가'였다. 그것은 일종의 죄의식에서 비롯된 선택이었다. 학교 친구들은 
화려한 휴가를 '보고 싶다'고 했다. 나는 그다지 보고 싶은 기분은 아니었다. 말초 신경을 자극하는 순간의 쾌감을 나는 좋아했다. 차라리
다이하드 4.0이 낫다 싶었다. 콧소리를 응, 응 내며 보고싶다, 보고싶어, 영화관이 없는 시골 촌구석의 미비한 설치구조를 탄식하던 친구들을
기억해냈다.


 전적으로 내 의견을 존중한다던 언니는, 표를 산 나중에서야 "나, 이 영화 친구랑 봤어." 약올리듯이 씩 웃으며 말했다. 나는
그만 언니에게 미안해져버렸다. 언니가 트랜스포머에 대한 친구들의 호평을 들려준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었던 것이다. '광주에 살면서 화려한 휴가도
안볼려고 하다니!'하며 내심 언니를 무시하며 민주주의에 대한 자기소양에 대해 맹목적으로 도취해 있던 내 태도에 경멸감을 느꼈다. 얼굴이 뜨겁게 타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너, 휴지가 꼭 필요할 걸?"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점심을 먹었던 냉면집에서 가져온 티슈를 꺼내든다. 나는 키위 쥬스, 언니는 카푸치노를 열대야에서 달아오른 위 속으로 부어넣었다.



 영화의 초반은 그야말로 평화로운 일상이었다. 택시기사인 강민우(김상경)이 하나밖에 없는 피붙이 동생 강진우(이준기)를 뒷바라지 해주고, 풋내가 술술 나는 첫사랑에 빠져서는 관객들을 실실 웃기고….

 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소수의 권력자들로 인해 그저 평범한 일상만을 추구하던 '과거'에서 그 평화를
사수하기 위한 투쟁으로써 '현재'를 불살라야만 했던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저들은 왜 싸웠을까? 그저 대항하지 말고 가만히 있었으면 죽지 않았을 것을…. '가장된 평화'라고 하더라도 그 속에서 내심 안주하며, 사회 구조는 정당치 못하더라도 그 자체 내에서 또다른 평화를 구성할 수 있었을 것을…. 이제까지 여러 미디어와 책들을 통해 접해왔던 민주화 운동에 대한 의구심과 죄의식으로 인한 은폐의 소치였다. 나는 진정으로 민주를 갈구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이들을 뒤로 하고 도청으로 향하던 여러 사람들의 일그러져 있으면서도 행복에 젖은 얼굴을 바라보며 내가 휴지를 들고 입 밖으로 세어나오던 오열을 가까스로 막으며 눈물을 닦아냈던 것은 무슨 이유에서인가.

 같은 사람임에, 굴복을 이겨내지 못하고 죽음을 이겨내는 인간임에, 사랑하는 부모님과 언니 오빠를 곁에 두고 그들을 내 몸처럼
소중히 여겼기 때문에, 그들과 상황만이 다를 뿐 별다른 차이가 없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들은 다름아닌 나다. 다름아닌 스크린을 대면한 청중들이다. 다만 하느님의 성토와도 같은 세계로는 절대로 구성될 수 없는 '현실'의 같은 면과 다른 면의 사각지대에 운명지워져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돈과 권력을 원하지 않고 평범한 생활만을 추구했던 이들을 수렁에 빠뜨린 이가 뜻하지 않게 사면되었고, 100만원 안팍의 알뜰한 재산을 소유하며 외국을 표류한다. 경호원을 거느리고 있고, 아들내미는 유명 탤런트와 결혼하고, 한국의 여러 유명 지사들의 방문을 받으며 호의호식하며, 심지어는 저의 호를 띄운 일해 공원까지 세운단다. 웃긴 일이다. 이것이 바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한계다.




강풀님의 26년이 또렷이 생각난다. 사람의 죽음은 항상 정당화 될 수 없는 고유적인 천권이지만, 이 경우만은 다르다. 그는 용서될 수 없다. 최악의 상황에 이르러서도 사람의 앞에 무릎 꿇지 않고 제 뱃속만 기름으로 채우는, 천하에 둘도 없는 독재자.

허나,

나는 그 시대를 살아가려 노력해 보지 못했다. 나는 그 시대를 기억해보려고 하루를 보내지 못했다. 나는 진정이지 못했다.

말할 자격이 없어 고개를 숙인다.

by 목마른우물 | 2007/08/04 23:20 | 스크린, 우물에 빠지다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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